2008년 11월 29일 토요일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또 행동으로 실천하는 지금의 내가 행복하다"

2007-01-04 02:48:34

저는 연세대학교 지구환경연구소의 연구원이면서 동시에 같은 대학 대기과학과 학생이라는 2개의 신분을 갖고 벌써 만 3년 반이 넘게 살고 있습니다. 연구원으로 일한 댓가로 학교로부터 받은 인건비의 대부분을 등록금이라는 명목으로 매학기 학교에 다시 납부할 때마다 "이게 뭐하자는 코미디인가"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이런 경제적인 모순 말고도 제가 느끼는 모순이 또 있는데, 바로 학생운동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학부생들과 같은 건물에서 수업듣고, 자보를 읽고, 때로는 조교를 하면서 학부생들과 얘기도 나누지만 동시에 실험실 관측장비들과 씨름하고 프로젝트 보고서 마감 맞추느라 학부 총학선거가 언제였는지도 모르면서 지나가버리기도 합니다. 학부생들과 항상 같이 있지만, 또 항상 분리되어 있죠.

그래서 학생운동을 하는 학부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들의 선배이면서, 동시에 그들이 내는 등록금으로 인건비를 받아서 다시 제 등록금을 내는 처지이면서, 구경만 한다는 마음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던 중에 작년 4월 TV 뉴스를 통해 "교수감금"이라는 충격적인 문구를 봤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일이..?

무슨 일인가 하고 들여다보니 역시나 TV뉴스는 믿을게 못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침소봉대(針小棒大)라고 보직교수들 회의실 앞에서 연좌농성한 것을 그렇게 악의적으로 보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직교수들은 자유롭게 회의실 안팎을 왔다갔다 하다가 기자들이 오니까 우루루 회의실로 몰려들어가서는 마치 "감금"당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라는 학생들의 주장이 훨씬 설득력 있어 보였습니다. 또 같은 TV 프로지만, 어떤 시사프로그램에서는 "학생들과 교수들의 사태진술이 엇갈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기자 질문에 회피로 일관하는 학교 보직교수들의 모습을 보며 무엇이 진실인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출교라는 가장 강도 높은 징계를 당한 학생들이 재작년에 이건희 박사 학위 수여에 반대한 학생들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더 마음이 동했습니다. 학위를 최고의 명예로 인정하고 또 생활의 목표로 삼는 대학원생으로서, 기부금 냈다고 학위를 덜컥 줘버리는 학교의 행태에 강하게 분노해서 회식 자리에서 지도교수님께 "이건 마치 대학이 기업에 몸을 판 것과 같습니다. 학위 수여는 대학 고유의 특징 아닙니까."라고 성토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서론이 길어졌는데, 오늘 레디앙에 갔더니 이들에 대한 기사가 오랜만에 떳길래 소개하려고 합니다.
"고대 '간판' 때문에 싸우는 것 아니다" (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4566 )

특히 제가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출교조치를 당한 한 학생의 인터뷰 내용이었습니다(그래서 글의 제목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아래 인용)

.. 출교생 주병준(24, 지리교육과)씨는 "학생들의 차가운 시선을 안다"고 했다. 학생 운동을 하기 전 2년간 고시 공부를 했던 주씨는 "차가운 시선에 가슴이 아픈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도 계속 고시를 공부했다면 아마 100% 우리를 지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담담히 토로했다.

이어 그는 "경제의 양극화만큼이나 의식도 양극화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또 행동으로 실천하는 지금의 내가 행복하다"면서 "단순히 학교 복귀를 원했더라면 사과를 했을 것이다. 우리가 학생 운동의 상징으로서 '방파제' 역할을 하는만큼 더 열심히 책임감을 가지고 살 것"이라고 다짐했다.


연구원 생활 3년을 하는동안 보아도 보지 않은 듯 들어도 듣지 않은 듯 지내다가, 최근에 당에 가입하고 정치적인 집회와 강연회에 참석하고 또 토론하면서, 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떳떳하게 주장할 수 있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내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 자존감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 최근에 깨닫고 있습니다. 농담 약간 섞어서, 연구 스트레스 때문에 빠지던 머리카락이 다시 나는 것 같습니다^^

고려대학교 측의 부당징계로 출교조치를 당한 학생들도 제가 느끼는 "해방감"을 느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많은 사회부조리 중에서도, 학생이라면 가장 먼저 저항해야할 사안(대학 내 비민주화와 기업지배)에 저항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그들이 이런 자신의 권리를 지켜려했기 때문에 학생으로서 누려야할 최소한의 권리마저 박탈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이들의 싸움은 고려대학교만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고려대 당국은 신자유주의적 대학발전이라는 미명하에 학생자치권을 탄압하는 것에 단지 다른 대학들보다 앞장서고 있는 것뿐이므로 이 출교자들을 지켜내지 못하면 이러한 탄압은 더 많은 대학으로 확대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많은 대학 총장들이 고려대를 이른바 "벤치마킹"했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저 또한 지도교수님을 통해 회식자리에서 '우리가 고대에게 밀린다'며 더 높은 등록금과 강한 대학 구조조정의 필요성에 대해 듣곤 합니다. 인터뷰한 학생의 말처럼 이들이 바로 "학생 자치권 탄압의 방파제"가 된 것입니다.

저는 대학원에 다니면서, "이 놈의 학교, 졸업하기만 하면 다신 쳐다보나 봐라"며 속으로 되뇌이곤 합니다. 형편없는 연구환경을 제공하면서 연구원들에게 바라는 것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학생들의 힘으로 이런 대학 당국들의 부화뇌동을 저지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제가 한국대학에 느낄 일말의 자부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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