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1-10 02:51:54
월요일 저녁,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 라디오로 얼핏 들었습니다. "미국은 자신들의 노후화된 핵탄두들이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탄두를 새로 개발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라디오 뉴스에까지 나왔고 북핵사태 이후 핵에 대해 다들 민감한만큼 왠만한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는 다 나와있을 줄 알았는데 집에 와서 막상 검색을 해보니 예상 외로 기사화 된 곳이 별로 없는지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제가 자주 가는 프레시안과 레디앙은 아예 기사가 없는 듯 합니다. 북한과 이란이 핵무기 개발한다고 발표했을 때 거의 모든 신문이 다뤘던 것과는 대조됩니다.
조금 더 검색해보니 한겨레 기사가 있네요.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182692.html
내용인즉슨, 원래는 구형 핵탄두가 노후되어 위험할 지 모르니까 신형 핵탄두를 개발한다고 했다가 막상 조사 결과 안전하다고 판정되니까 다시 새로운 이유를 대면서 신형 핵탄두 개발 계획을 밀어부친다는 것입니다. 이 신형 핵탄두를 검증하기 위해 핵실험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하는군요.
IAEA 회원국인 이란이 원자력 개발로 전기를 생산하겠다고 했을 때 그 말을 믿을 수 없다며 이란-미국 갈등이 고조될 때 양비론을 펴던 사람들을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란이 핵을 처음부터 안 만들면 되잖아."라면서 미국만을 욕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죠. 그런데 "안전하니까 새로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결과가 나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형 핵무기를 만들겠다는 미국의 계획에 대해서는 어째서 많은 이들이 침묵하는지 답답합니다. 또한 저는 비록 핵의 자위권은 인정하지 않지만(되려 핵도미노만 확산되죠),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을 보유한 최강 군사대국과 수십년째 갈등국면에 있고 몇차례 실질적인 군사적 충돌의 위험까지도 갔던 북한이 실시한 핵실험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하던 사람들이, 본토에 미사일 선제공격 같은 건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미국의 신형핵탄두를 개발 계획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편향된 태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반핵정당이라고 우기는 한나라당은 차치하고서라도, 북핵문제는 중대한 환경사안이라며 두손두발 다 들고 핵실험 반대를 외쳤던 환경운동연합(한때 회원이었습니다)과 같은 단체들이 왜 이번에는 같은 핵을 놓고 조용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미국 핵은 좋은 핵, 이란/북한 핵은 나쁜 핵"이라는 생각은 이처럼 글자로 써놓고 읽으면 매우 보수우익 사고 같지만 새삼 우리 사회의 많은 곳에 무의식적으로 스며들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픕니다.
이번 기사를 읽으며 또 하나 분노한 것은 과학자들의 행태입니다. 기사 내용 중에, [레이 키더 리버모어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은 “기술적인 장점보다는 두 연구소에 대한 ‘생존의 정치’가 고려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저는 이를,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연구소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 개발을 사실상 원했다는 내용으로 이해됩니다. 날카로운 도끼날이 많이 있어도 도끼자루가 없으면 소용없다는 말처럼 미국의 강한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이를 기술적으로 뒷받침할 과학자들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기사에 따르면 그 과학자들에게는 과학이 하나의 학문이나 추구해야할 가치가 아니라 단순한 돈벌이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가 봅니다. 2차 대전 때 핵무기 개발을 주장한 과학자들은 그래도 "핵무기가 생기면 핵균형으로 인해 세계평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비록 순진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떤 가치를 추구했었는데 60여년이 지난 그들의 후배들은 오로지 자기네 돈벌이만 생각하다니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가 무덤에서 뛰쳐나올 일이군요. "난 정치같은 거 신경 안 써"라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은 사실상 기득권층의 이익을 철저히 대변하면서 눈가리고 아옹하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저 역시 자연과학분야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보다 훌륭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 아니 훗날 제 연구가 누군가를 억압하는데 쓰이게 될 경우 이에 대해 무감각해지지 않기 위해서 당활동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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