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제출 등으로 오늘따라 학교밖에 나갈 일이 많아서 늘 우산을 챙겨 다녔으면서도, 집에 오는 버스에서야 "아, 비가 내리면 명동성당 앞 노숙농성단은 어떻게 되는거지?"라는게 생각났습니다. 어제 함께 투쟁하자고 해놓고선 하루종일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느꼈는데 다행히(?) 이상훈 전 위원장님(상훈씨라고 하기엔 왠지 어색^^;;)께서 귀가하셨네요.
집에 오는 버스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며 갖게 된 단상을 아래에 적어 봅니다.
지난주 토요일 동아리 선배의 결혼식이 있어서 간만에 동아리 사람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 제가 동아리 활동할 당시에 저보다 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던 "빨간물"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서 당원이 되었다고 자랑삼아^^;; 얘기를 했습니다.
당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녀석은 민노당이 요즘 문제라고 하면서 그 이유로 "한미FTA를 마냥 반대하는게 문제"라고 하더군요. 저는 깜짝 놀라서 당에 문제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나는 당이 "사활을 걸고" FTA반대 운동을 건설한 게 그나마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이하는 문답식으로 적겠습니다(실제 내용은 훨씬 길지만 대충 간추린 것입니다. 같이 있던 친구들 말이, 우리 둘이서 60분 이상 토론했다고 하더라구요;;)
친구: 나도 지금 이뤄지는 FTA 협상은 다 내주기식 협상이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봐. 그러나 거리에 나가서 반대한다고 해서 과연 FTA를 막을 수 있을까? 차라리 협상을 통해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어야하는데, 보다 다양한 대안을 찾기 보다 마냥 반대만 하는 지금 모습을 보면 예전의 민주노동당이 아닌거 같아.
나: 주고받기식으로 FTA 협상에 임하는 대표단에게 "이건 주고 저건 받아와라"라고 주장하면 과연 노동자 서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난 오히려 FTA 전면 반대 투쟁을 통해 당이 보수 정당과의 차이를 확실히 보여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친구: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는 것도 좋지만 너무 FTA를 정치적으로만 생각하는 거 아냐? 국민들을 생각해야지. 한칠레FTA가 적절한 정책이 뒷받침되지 못해서 포도재배 농민들이 죄다 파산한 건 분명히 무능한 우리 정부의 문제이지만, 우리가 칠레와의 FTA를 일본보다 먼저 체결함으로써 자동차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다고. 나는 우리나라의 유치산업조차 보호하지 못하는 협상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나: 오히려 국민을 생각하기 때문에 FTA를 반대하는 거잖아. 그리고 FTA에서 개별 종목별 협상도 중요하지만 더 크게 신자유주의적 사회 재편-그러니까 노동유연화, 의료 및 교육의 시장화, 공공시설의 사유화 등이 국민에게 더 큰 피해를 주잖아. FTA를 정략적으로 보는게 아니라 당의 지지층인 노동자 서민의 입장을 옳게 대변하는 거라구.
친구: 나도 지금처럼 아무런 보호망없이 비정규직이 확산되는건 문제라고 봐. 하지만 노동유연화는 분명히 필요한 거야. 한 회사에 충성을 바치겠다는 평생고용도 물론 장점이 있지만, 자유롭게 회사를 옮기는 것 역시 장점이 있다고. 아일랜드의 경우 노동이 유연한만큼 재취업도 수월한데 그만큼 경쟁력이 있다구.
나: 아일랜드 사례는 사실 처음 듣는 거라서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한국에선 아일랜드에서처럼 일이 진행되지 않을테니까 난 반대하는게 맞다고 봐. 그리고 네가 하는 주장은, 네가 그토록 싫어한다는 노무현의 주장과 비슷한거 같아.
친구: (노무현과 비슷하다는 말에 버럭 화를 내며)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들이 왜 고통을 받는지 생각해봐. 세계적 추세인 노동유연화가 한국 사회에 부분적으로만 진행이 되어서 그래. 나도 IMF가 X 같다고 생각해. 그러나 이후 노동유연화는 현실이 되었어. 그런데 일자리가 온전히 유연화되지 않고 부분적으로만 유연화되고 있어서 비정규직들이 고통을 받는거야. 일자리가 전체적으로 순환해야하는데 소위 말하는 "나쁜 일자리"만 유연화가 되었거든. 어느 일자리들이 유연화가 안 되었겠어?
나: 그거야 정리해고에 맞서 싸워서 일자리를 지켜낸 대규모 사업장들이지. 그러나 자신의 일자리가 위협받는 걸 막아낸 정규직 노동자들을 탓할 수 있을까? 그 논리는 자칫, 정규직 노동자들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어렵다는, 역시 노무현 논리와 비슷하잖아.
친구: 자꾸 노무현과 비슷하다고 할래-_-+++ 그리고 거시경제학 책을 한번 봐바. 너 말대로는 경제가 운용이 안돼..
이후에도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녀석은 이과대인 저와 비슷한 공대 소속이었지만, 예전의 투쟁일변도 주장들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이 되어서 3학년 때 경제학을 부전공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런 친구가 제게 하는 말들은 너무 놀라운 것이었습니다.(이하 따옴표는 친구의 말)
"한미FTA와 신자유주의는 별개라고 생각해야돼. 난 한미FTA는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강요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반대하지만, 신자유주의는 필요다하고 봐"
"어떻게 신자유주의를 부시의 이라크 전쟁에까지 적용시킬 수가 있지? 이라크 전쟁은 에너지 정책의 일환이지 신자유주의가 적용될 수 있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야"
많은 토론을 했지만, 위에 적은 두가지는 나중에 제가 그 친구에게 "이것만은 정말 이해가 안된다"고 정리한 것들입니다. 그 밖에 "경제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해서는 제대로 운용되지 않아"라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지만, 눈에 보이는 서민들에게 피해를 양산하는 경제 정책이 더 큰 틀에서는 옳을 수 있다는, 경제학을 부전공한 친구의 말에 전 납득이 안 가더라구요.
오해할까봐 말씀 드리자면 제 친구는 결코 우익이 아닙니다-_-; 어릴적부터 서울에서만 자란 저와 달리 완전 농촌에서 성장해서 농민들 문제에 가장 절절하게 분노하는 친구이고, 갓 입학해서 3월 처음 나간 집회에서 전경과의 몸싸움을 보고 넋을 잃을 저를 달래면서 "우리 사회가 아직 이 정도밖에 안돼"라고 말해주면서 투척용 계란을 쥐어준 친구입니다. 자기 시간 쪼개가며 야학 활동하고 또 활동량이 많은 만큼 아는 것도 많아서 제가 늘 배울게 있는 친구입니다. 또한 지금도 역시 "우리 사회의 힘없는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은 소수가 부를 독정해서 그렇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는 친구입니다.
동아리 내에서 가장 얘기가 잘 통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친구와 제가 생각이 많이 달라져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속상했습니다. "서민들이 고통받지 않게 편중된 사회의 부를 제대로 분배해야한다"는 목표는 같은데 어째서 그 과정에 대한 생각은 이리도 다를까요. 한편으로는, 예전 같으면 "아 그렇구나~"하면서 듣고 있었을 제가 당활동 하면서 많이 배우긴 배웠구나 싶기도 했지만 여전히 착잡하더라구요.
FTA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더 크게 내야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그 자체로 악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경제 정책일 뿐이고, 이는 시대적 대세이다"라는 녀석의 생각이 저와 생각의 차이를 갖게 된 원인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는 결코 객관적이지도 않으며, "단순한" 경제정책에 그치지 않고 전쟁과 정치의 문제로까지 나아간다는 사실을 더 명확히 해야한다고 생각이 들더군요.
월요일 촛불 집회에서도 그 녀석과 한 토론이 자꾸 생각나더라구요. 그런 점에서 일부 발언자들이 "미국과의 협상은 헤비급과 라이트급의 경기"라는 비유를 들며 국익 방어를 주장한 것과 대조적으로, 당에서 이해삼 최고위원이(이름이 정말 "해삼"?) 등록금 폭등, 의료비 폭등, 공공 서비스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폭넓게 한미FTA 문제를 제시한 것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무심코 지나치는 많은 시민들은 그 때 그 친구처럼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일까, 더 잘 알려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생각이 많아지는 촛불문화제와 비오는 그 다음날이었습니다.
-----
cyj
종환씨 글 잘 읽었습니다.
사회 양극화라는 표현있죠? 대체로 이는 경제적 양극화를 두고 하는 얘기겠지요.
경제가 양극화되면 보통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양극화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친구분이 FTA에 신중한 반대나, 협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우익이여서가 아닌 것처럼
많은 이들에 머리 속은(또는 심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늘 일관된 생각을 하진 않는 것 같아요.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경제학개론 수업을 우리나라 좌파 케인즈주의를 대안으로 생각하는 대표적인 학자인 유철규교수한테서 강의를 들었는데
(전 경제학 무지 싫어합니다^^) 그 때 교재가 맨큐의 경제학이었어요, (다음 해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스티글리츠의 경제학으로 바뀌더라구요) 근데 같은 학기에 저는 정치경제학과 경제사상사도 배웠거든요?
누구편에서 경제를 운영하느냐에 따라 정말 많이도 다르다고 봅니다.ㅋ
자본주의 '경제학'이라는 것이 무릇 '한정된 재화를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그야말로 경제적으로 운용하여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적인 만큼 친구분이 선택한 경제학은 한 쪽 포커스에 맞춘 경제학 인것 같네요..
어이없게도, 세계은행(WB)에도 '세계의 빈곤을 없애자'가 목표라고는 하죠. 자본주의적 방식으로는 아무리아무리 해도 평범한 이들에게 자본가들만큼의 몫뿐 아니라 자기노동의 해당량 만큼도 받기 어려운 것인데도 말이죠.
친구분의 FTA에 민주노동당이 덮어놓고 반대하는 것이 옳으냐고 한 질문에 대해 종환씨의 반박은 옳았다고 봅니다.
민주노동당이 선택적으로 한-중 FTA는 찬성하고, 한-미 FTA는 반대한다면 그것이 더 모순적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FTA를 반대하는 것은 그 협약의 성격 자체가 자본간 '무역'의 모든 장벽을 허물겠다는 기본 원칙아래 진행되는 만큼 평범한 사람에게 그것이 돌아올리 만무합니다.
예컨대 쌀농사 짓는 농민에게는 손해고 핸드폰만드는 노동자들에게 이익이라는 논리말이예요. 물론 삼성이 애니콜 팔아 돈을 많이 벌지언정 그것이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돌아올런지..
부시의 전쟁이 신자유주의 전쟁이냐? 라고 의구심을 품는 것도 전쟁이 제국주의의 군사적 표현이라는 수식어 처럼 전쟁을 쌍수들고 환영하고, 이라크 침공 이후 주식시장에서 상승폭을 기록했던 기업이 어디었으며 누가 이익을 보는지를 보면 답은 나온다고 봅니다.
하여간 두서없이 제 생각을 주욱..적어본 비오는 날 다음날 아침 이네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