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구상 내 왼쪽 날개를 맡았던 지금종씨가 미래구상과는 완전히 갈라선 듯 하네요.
"현재 한국사회의 최대 과제인 사회 양극화문제에 대해 큰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세력을 단지 '반한나라당 전선'을 위해 부활시켜야 한단 말인가"라며 범여권의 재집결과 여기에 장단을 맞추는 미래구상의 창당은 '도로 열린우리당'이라고 비판하고 있네요.
대안으로는 시민사회 각계 지도자들께 정치세력화해서 "최근 민주노동당이 제안한 '진보대연합'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라고 쓰고 있네요.
중앙위에서 ‘진보대연합 실현을 위한 민주노동당 입장'이 통과되었는데, 당 안팎으로 이에 대한 호응이 기대됩니다.
출처: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40070622155526
대 선을 앞두고 시민사회진영이 분화하고 있다. 범여권 대통합파와 시민사회진영 일각의 창당 움직임이 부단히 접점을 찾고 있는 가운데, 이에 반발해 '제3의 세력화'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태동했다. '통합과 번영을 위한 미래구상'의 사무총장으로 활동했던 지금종 전 문화연대 사무총장,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임종인 의원 등이 이런 논의의 중심에 있다.
이같은 분화는 '반(反)한나라당'이라는 이유로 노무현 정부와 범여권에 면죄부를 부여할 수 있느냐는 반론에서 출발했다. 최근에는 반신자유주의, 양극화 해소 등 진보노선을 뚜렷이 한 '제3의 진보정당'을 건설해 기존 정치권을 견인하고, 진보정당의 한 축인 민주노동당과 부족분을 상호 보완해가자는 주장으로까지 나아갔다.
지금종 전 총장이 이같은 내용의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그는 "한나라당과 범여권은 결코 우리 사회의 대안세력이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미래구상이 추진하는 신당에 대해서도 "반한나라당 전선 구축에 지나치게 집착해 범여권의 기존 정치인들에게 면죄부와 회생의 길을 터주는 '신수혈론'이자 반역사적 행위"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또한 민주노동당에 대해선 "마땅한 지지정당 없이 떠 있는 20%가량의 진보적 성향의 부동층(주로 고학력, 중산층)을 견인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요컨대 30% 가량으로 추산되는 진보적 성향의 유권자들 가운데 민노당이 흡수한 10% 바깥에 진보진영의 '블루오션'이 있다는 게 지 전 총장의 주장.
문제는 소위 '제3 진보정당'의 대선 방법론이다. 지 전 총장은 민주노동당과는 '진보대연합'을, 범여권에 대해선 "비교적 양질의 정치인 일부를 선별적으로 연대의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양쪽을 아울러 선거연합과 후보단일화를 모색해가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진보진영 내에는 상층부 중심의 진보대연합에 대한 반론이 있는 게 사실이고, 범여권과의 후보단일화 내지 선거연합은 실현가능성은 물론이고 자칫 '비판적 지지'로 귀결될 가능성도 있다. '미래구상'에 대한 이들의 비판이 종국에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어쨌든 범여권과 민노당 사이에 위치한 좌파적 성향의 일부 인사들이 모색하는 '제3의 진보정당' 움직임은 시민사회진영의 좌우 분화를 대표하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주장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제3지대론'의 또 다른 지류가 될지, 민주노총, 전농 등의 기존 조직에 의존하지 않은 새로운 진보신당으로 자리를 잡을지는 지켜 볼 일이다. (편집자)
김근태는 무엇을 위해 불출마 선언을 했나
범여권 대통령 후보의 한사람으로 거론되던 김근태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했다. 그는 "20년 전 민주세력의 분열 때문에 6월 항쟁이 군부독재정권의 연장으로 귀결됐던 실패한 역사를 되풀이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며 한나라당 집권저지를 위한 '범여권 대통합의 밀알'이 되겠다고 자처했다. 이를 보는 범여권은 대통합의 기폭제가 되기를 기대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하지만 범여권의 대통합 시도를 지켜보는 국민의 시선은 냉랭하기 그지없다.
최근 한 여론조사의 결과는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70%가 넘는 국민이 범여권의 대통합에 관심이 없으며, 대통합이 되더라도 지지하겠다는 사람은 겨우 1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열린우리당과 탈당파는 물론이고 민주당과 국민중심당, 시민사회세력의 신당을 모두 포함한 대통합에 대한 지지율이다. 물론 대통령후보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수치가 대선결과에 고스란히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현 시점에서 대통합에 대한 국민의 생각과 마음을 반영한 것은 분명하다.
김근태 의원의 불출마 선언을 폄훼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가 살아온 궤적을 볼 때, 그간의 정치적 행보가 뛰어났다고 평가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민주주의를 위한 그의 태도와 진정성만은 인정하고 싶다. 어떤 이들은 불출마 선언의 배경을 낮은 지지율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해서라고 말한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유만이라면 고만고만한 지지율에 불과한데도 대선에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범여권의 다른 후보들을 설명할 길이 없다. 더욱이 그를 바라보며 캠프에서 일해 온 사람들과 지지자들의 기대를 물리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보면 김근태의 선택은 그의 말마따나 "십자가를 지고 무덤 속으로 걸어가는" 비장한 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선택한 방법이 아니라 내용이다. 우선 지적할 것은 왜 범여권이 재집권해야 하는지 그 내용을 충분히 말하지 않고 있는 점이다. 단지 '민주 대 반민주'라는 낡은 이분법으로 범여권과 한나라당을 구분하고 있다. 즉 한나라당은 반민주세력(惡)이고, 범여권은 민주세력(善)이라는 등식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군정종식과 대통령 직선제가 시급했던 87년 상황과 현재 상황을 동일시하는 것도 완전히 잘못된 전제다. 또한 범여권의 분열은 개혁에 대한 국민의 기대에 대한 배신과 이로 인한 민심의 이반과 준열한 심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는 열린우리당이 정책과 이념이 다른 사람들로 구성된 잡탕정당이었다는 데서 예정된 몰락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한나라당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서 사상과 정책내용, 행동양식이 각기 다른 그 사람들을 다시 끌어 모으는 것이 타당한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대통합인가? 한미 FTA 추진에 문제의식을 표방하며 단식투쟁까지 한 김근태 의원이 찬성론자들과 다시 한솥밥을 먹겠다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는가?
여론 지지가 낮아서 분열과 재결집의 방법을 택한 거라면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이고, 정치적 생존을 위해 정치적 차이를 무시하는 대통합을 한다면 원칙도 소신도 없는 기회주의적 태도에 불과하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김근태의 상황 인식은 명백히 시대착오적인 것이며 시대정신을 반영하지 못한다.
대통합은 옳지도 않고 승리할 수도 없는 길이다
오늘날 우리 국민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요인의 맨 앞에는 신자유주의 수용으로 인한 사회양극화가 존재한다. 주택문제, 교육문제, 비정규직 양산과 실업문제, 사회복지 부족 등 국민을 괴롭히는 수많은 사회문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 우리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 세 번째로 빈부격차가 큰 나라이며 사회안전망이 가장 취약한 나라다.
물론 이것의 모든 책임을 노무현 정부와 범여권 정치세력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자본주의 세계체제로부터 비롯되는 부분도 있고, 역대 정권으로부터 떠안은 부정적 유산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97년 IMF 위기 이후 10년간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본격화되었다는 측면에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이른바 '민주정부'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더욱이 노무현 정부는 사회양극화의 심화와 국민의 삶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 분명한 한미 FTA까지 추진했다. 이러한 정책실패가 한나라당에 반사 이익을 가져다줌으로써 오히려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협하는 요인을 제공한 부메랑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실패에 책임을 느껴야 할 범여권이 재집권을 위해 아무런 내용과 원칙도 없이 추진하는 대통합은 어불성설이다. 추정컨대, 범여권의 이러한 인식의 한편에는 자신들에게 민주세력이라는 정당성을 스스로 부여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일정한 규모의 세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집권이 가능한 정치세력이라는 안이한 생각이 깔려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현재 국회의원 수로 단순 계산하면 범여권의 대통합이 대선 국면에서 실질적인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큰 착각이다. '민주주의'는 우리 국민 다수가 피땀으로 쟁취해서 역사적으로 형성한 가치이며 우리 사회 특정세력 그 누구도 전유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범여권의 정치인들을 대체할 새로운 정치세력으로서의 민주세력은 무궁무진하다. 원칙 없는 대통합은 국민에게 감동은 커녕 분노를 불러일으킬 뿐이며, 그 결과는 그 길을 함께한 정치인들을 '무덤 속으로 걸어가도록' 만들 것이다.
소통합이든 대통합이든 근래 보여주는 범여권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이 불순해 보이는 까닭은 우리 사회의 미래와 국민의 삶의 질을 우려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의 연장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사실 현재 정치 상황을 조금만 들여다보더라도 범여권의 정치세력들이 대선승리보다는 총선에서의 생존이 초미의 관심사라는 걸 알 수 있다. 내용과 원칙을 무시하고 정략만을 일삼는 그들에게 국민은 안중에 없다. 그들에게 국민은 선거철이라는 특정한 시기에 권력을 위임받기 위해 존재하는 기만과 회유의 대상, 즉 유권자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한나라당에 대한 '두려움의 동원'과 지역주의를 선동하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한나라당의 집권은 용인할 수 없는 일이다. 단지 그들이 독재정권의 후신이어서만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과 태도를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직도 부패와 지역주의, 증오와 대결에 익숙하고 반민주, 반통일 논리에 기생하는 수구세력에 불과하다. 가진자들과 자본에는 한없이 관대한 반면, 사회공공성을 높이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일에 대해서는 인색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쏟아지는 대선 공약들을 검토해 볼 때 낡은 성장논리에 갇혀 우리 사회의 창조적인 미래를 설계할 어떤 능력도 없다고 본다.
다만 지금 한나라당이 누리는 역대 최고의 호황은 노무현 정부와 범여권의 실패에 따른 반사이익일 따름이다. 범여권은 그들이 그토록 문제 삼는 한나라당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 방조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물론이거니와 범여권도 결코 우리 사회의 대안세력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우리 국민에게 최악과 차악 가운데 하나의 선택을 강요하는 일에 불과하다.
정치적 대안세력으로서의 진보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한국사회가 일정한 사회발전의 성과를 성취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사회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을 갖추는 데 실패했으며, 이에 따라 사회경제적 개혁의 한계를 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대다수 국민의 이해를 관철시킬 새로운 정치세력의 형성에 실패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역사적 과정의 성과로 민주노동당이 등장할 수 있었지만 아직은 정치적 소수에 불과하다. 기존의 보수 정치세력이 주도하는 낡은 정치구도가 20년의 세월을 흘려보낸 셈이다. 이제는 이런 보수 일색의 비정상적 정치구도를 깨야 할 시점이다.
최근 실시한 한 언론사의 '국민 이념성향 조사'에서 자신의 이념성향을 보수라고 평가한 이들이 29.9%, 중도라고 평한 이들이 35.5%, 진보로 평가한 이들은 34.6%였다. 또 '앞으로 어떤 성격의 정당이 우리나라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11.4%만이 보수정당이라 답했고, 중도는 28.4%, 진보정당은 39.2%라고 대답했다.
조사 주체와 조사 방법에 따라 차이가 적지 않은 것이 여론조사라고는 해도 앞의 조사 결과는 충분히 참고할만한 가치가 있다. 현재의 정당지지도, 혹은 대통령후보에 대한 지지도와는 별개로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여전히 자신을 진보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과 이명박, 박근혜 후보의 지지가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는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됐다. 하나는 노무현 정부의 실패와 이 실패를 전체 진보개혁세력의 실패로 뭉뚱그려 규정하려는 수구기득권 세력의 시도가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진보세력이 충분히 유능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며, 따라서 국민에게 정치적 대안세력으로 인식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수구보수세력이 진보세력이나 자유주의 개혁세력보다 유능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와 범여권도 실패만 한 것이 아니라 잘한 부분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두 세력은 국민의 고통을 치유하고 새로운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이명박을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가 범여권 후보 가운데 지지율 1위를 고수하는 아이러니를 직시해야만 한다. 단언컨대, 민중의 생활고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다.
'미래구상'은 '제3의 정치세력'이 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올해 초 4%대에 불과하던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율이 최근 상승세에 있다는 건 의미 있는 소식이다. 하지만 이는 민주노동당이 잘해서 나타난 결과라기보다 범여권의 우경화와 무능으로 인한 반사이익으로 보는 해석이 타당하다. 즉 범여권에 실망한 '이념적 진보' 성향의 사람들이 민노당으로 지지를 옮긴 것이다. 이 사람들의 전체 비율은 10% 안팎 정도인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향후 민노당은 환골탈태 수준의 큰 변화가 없는 한 10% 안팎의 지지율에서 정체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남은 약 20% 안팎의 진보적 성향의 '부동층'이다. 올 대선국면에서 누가 이들의 지지를 끌어내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의 장기적 정치구도의 향방이 가름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이냐, 범여권이냐, 혹은 제3세력이냐.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어느 세력도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혼미한 상황이 예상된다. 범여권은 대통합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합집산하고 있고 각 정파와 후보들의 움직임도 분주하지만 이른바 대통합은 쉽게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각 정파의 사상과 정책의 차이는 둘째치더라도 민주당과 통합신당의 합당 지연에서 보듯 각 세력의 이해관계가 난마처럼 얽혀있어 성사되기 어렵다. 그래서 일부 세력 간의 통합이 이루어진다 해도 범여권은 적어도 2개, 많게는 4개로 분할될 것으로 전망된다. 만에 하나 대통합이 이뤄진대도 '잡탕정당'에 또다시 지지를 보낼 리 만무하다.
민주노동당도 부동층의 지지를 끌어내는 데 역부족이다. 흔히 비판받는 당내 민주주의 부족, 정파싸움, 감동을 잃어버린 민주노총, 경직되고 폐쇄적인 조직문화와 낡은 이미지 등은 문제다. 하지만 그동안의 정당 활동에서 충분한 성과를 내지 못한 점,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점 등 대안적 정치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한 측면도 주요하게 작용했다. 그래서 제도정치 내 진보진영의 보루라는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폭넓은 대중이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새롭게 제도정치에 진입하는 제3세력의 형성을 통해 '진보적 부동층' 흡수 가능성을 모색해 볼 수 있다. 누가 제3세력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한동안 언론에서는 '창조한국 미래구상' 등 시민사회 일부 인사들이 참여하는 정치운동 세력을 '제3지대'로 지칭하곤 했다. 그러나 최근 '미래구상'의 일부 인사와 시민사회의 일부 인사들이 신당 창당을 선언 과정에서 '제3의 정치세력'으로서의 가능성은 상실됐다.
이런 판단의 근거로는 첫째, 이 신당이 범여권의 대통합의 한 부분으로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으며 신당 추진 측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 게 객관적 정황이기 때문이다. 둘째, 창당선언 자료에서 "우리는 독자성만을 고집하지 않으며, 우리가 추구하는 원칙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과 연대할 뿐 아니라, 범진보개혁 세력의 결집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문제는 '추구하는 원칙'이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은 데 반해 결집의 대상은 모호한 듯 하면서도 분명하다. 이 신당은 '도로 열린우리당'을 만드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반한나라당 전선 구축에 지나치게 집착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분명한 이념과 원칙, 정책 내용과 함께 현실적인 파급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책정당을 독자적인 힘으로 만들기 어렵다는 한계를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신당이 택한 길은 옳지도, 국민의 지지도 받을 수 없는 길이며, 범여권의 기존 정치인들에게 면죄부와 회생의 길을 터주는 '신수혈론'이자 반역사적 행위다.
이 신당이 범여권의 대통합에 참여하는 것이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하는 이런 추정이 다소 성급해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우려가 결코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한나라당의 집권은 용인하기 어렵지만 범여권의 재집권을 쉽게 용인해서도 안 된다. 현재 한국사회의 최대 과제인 사회 양극화문제에 대해 큰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세력을 단지 '반한나라당 전선'을 위해 부활시켜야 한단 말인가.
지금 진보신당이 필요한 때다
지금 우리 국민의 선택지는 최악도 차악도 아닌 최선의 정치세력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그것이 진보적 내용을 갖는 신당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진보만이 가진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회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다. 사회양극화를 구조적으로 심화시킬 수밖에 없는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이 어떻게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할 것인가. 불법 다단계와 고리 사채업이 날뛰게 하고, 주식과 부동산 광풍을 조장해 온 세력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겨도 되는 건가.
성장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다. '성장의 그늘'은 어떤 면에서 불가역적인 측면도 있다. 그것이 '성장 신화'로 대다수 국민을 기만하게끔 만든 함정이다. 진보가 추구하는 성장은 적어도 두 가지가 반드시 충족돼야 할 것이다. 하나는 자연을 파괴하거나 에너지 소비를 늘리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분배와 선순환을 이루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다양한 사회적 기업의 확산을 비롯해 환경, 문화, 과학 분야 등에서 21세기에 걸맞는 새로운 창조산업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그야말로 전면적인 산업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런 성장은 돈놀이와 막개발로 언제나 다수의 희생을 수반하는 낡은 산업화 세력의 성장과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이미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이 있는데 왜 또 진보정당이냐는 물음이 있을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민노당이 당분간 약 10% 정도의 국민적 지지를 넘어서기 힘들 것으로 평가된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이는 국민의 의사와 이해를 왜곡하는 보수일변도의 정치구도를 깨뜨릴만한 지지율이 아니다. 민노당이 이 정도 지지율에 머무르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이유 외에도 다양한 계급, 계층의 진보세력을 아우르지 못한 데 있다.
두루 알다시피 민주노동당의 핵심적 지지기반은 민주노총과 전농이다. 매우 소중한 지지기반이기는 하나 부족한 건 사실이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집단은 역설적으로 고학력, 중산층에 포진하고 있다. 현재 민노당은 이 집단을 충분히 견인하지 못하고 있다. 마땅한 지지 정당 없이 떠 있는 약 20% 가량의 진보적 성향의 부동층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는 제3의 정치세력은 그래서 필요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진보는 상대적 개념이며, 늘 변화하는 가치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민주노동당이 진보의 가치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측면이 있다. 사회경제적으로는 진보지만 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인 측면이 적지 않다. 생태적 가치나 풀뿌리 민주주의 등에 대해서도 철저하지 못하다. 정당운영에 있어서도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들이 자주 눈에 띈다. 소중하지만 개선할 점이 많은 진보정당이다.
따라서 21세기형 새로운 진보정당의 출현은 진보정치 스펙트럼을 넓히고 두텁게 만듦으로써 진보정치의 진지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창당이란 것이 워낙 많은 역량과 시일이 요구되는 험난한 과정이어서 진보신당 창당의 가능성을 비관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길이 옳은 길이라면 국민은 참여와 지지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국민의 약 80%가 고정적인 지지 정당이 없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국민의 대다수는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정당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만약 이러한 여망이 실현되지 못한다면 상당수의 국민이 급속히 탈정치화 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는 우리 사회를 장기적 보수화의 늪으로 끌고 갈 우려가 있다. 정치에서 더 이상 희망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책임지고, 우리 사회 미래의 희망을 밝힐 새로운 정치세력, 즉 시대정신을 올바로 구현하는 진보적 정당을 창출하는 것은 진보세력의 절체절명의 과제다.
진보진영의 대선전략
새로운 진보정당이 만들어진다면 단기적 목표는 올 대선 승리와 내년의 총선에서의 약진이 될 것이다. 그러자면 새로운 진보정당의 토대를 착실히 닦아가는 동시에 최근 민주노동당이 제안한 '진보대연합'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냉정하게 평가할 때 진보진영 전체가 연합해도 독자적인 역량으로 대선 승리를 획득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진보대연합'이 성사된다면 진보적 성향의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덧셈의 정치적 효과보다 곱셈의 정치적 효과를 얻을 공산이 크다. 또한 이 과정에서 상호 신뢰가 쌓이고 조건이 마련된다면 통합적 진보신당을 만들수도 있을 것이다. 남는 문제는 '진보대연합'을 통해 대선 승리가 가능할 것인가? 진보대연합만으로 대선 승리를 이룰 수 없다고 판단될 때 취할 수 있는 전술에 대한 검토일 것이다.
한 언론사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올 대통령선거에서 진보개혁세력은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에 36.5%의 국민이 '기존 정당과 거리를 두면서 진보개혁세력의 독자적 위치를 지킨다'고 답했고, 23.4%는 '수구보수정권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범여권과 연대해야 한다'는 응답을 했다. 6.3%는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결집해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같은 질문을 진보개혁진영 전문가들에게 던진 질문에서는 각각 36.7%와 37.6%, 16.5%의 응답결과가 나왔다.
이 같은 결과는 상당수의 국민이 한편으로는 진보세력의 독자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수구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진보세력이 범여권과 연대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것이 여론의 지표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범여권에 포함된 정치인 가운데 비교적 양질의 정치인 일부를 선별적으로 연대의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도 검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수구보수 세력의 집권이라는 최악의 정치적 결과를 막기 위해 연합 전술을 채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대의 전제는 각 정치세력이 먼저 확실한 자기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지 원칙 없이 섞이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각 세력이 정치사상과 정책에 따라 이합집산을 하는 것이 옳으며, 이를 기반으로 선거연합과 후보단일화를 모색하는 것이 정도이고, 국민의 여론을 올바로 반영하는 태도일 것이다.
진보세력 가운데는 범여권과의 연대를 용인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음을 잘 안다. 사실 정치사상과 정책의 차이를 갖는 이질적 정당 사이의 선거연합은 정당의 정체성을 뒤흔들 수 있는 위험 요소가 분명히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입장으로만 바라보면 한나라당과 별 차이가 없는 범여권 세력과 굳이 선거연합을 해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범여권 사이에는 충분하지는 않지만 민주주의와 남북문제에 관해서만큼은 일정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최소한의 공통분모는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것 때문에 진보의 정체성을 위협받으면서까지 범여권과 선거연합을 고려할 필요는 없다.
만약 진보진영이 범여권과 선거연합을 할 이유가 있다면 첫째, 진보대연합의 단일 후보가 범여권 후보와의 경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다. 만일 진보대연합을 통해 국민에게 감동을 주고, 지지를 획기적으로 높인다면 진보대연합의 단일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도 있다. 범여권에 대한 국민의 반응이 매우 차갑기 때문이다.
둘째, 사표방지 심리를 막아내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역대 대선에서는 반한나라당 정서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진보진영의 유권자의 일부까지도 노무현 등 이른바 자유주의 개혁세력 후보에게 투표를 하는 경향성이 강하게 나타났었다. 다만 사회양극화 심화 등 정책실패에 따른 정부 여당에 대한 실망이 매우 크고, 한미 FTA라는 큰 쟁점이 남아 있으며, 범여권이 지지부진한 이번 대선은 성격이 좀 다르다는 분석은 일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연합을 할 경우, 사표방지 심리가 작동할 공간을 없애는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셋째, 설사 범여권과 경선에서 패배하더라도 연립정권 참여를 통해 진보정치가 추구하는 정책을 실현할 기회를 확보하고 수권능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측면도 있다. 또한 무엇보다도 연립정권의 참여는 진보진영의 정치적 성숙도와 유연성을 확인시킴으로써 보다 폭넓은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범여권과의 선거연합이 성사된다면 그 조건으로는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등 진보정치 진영의 정치적 기반 확대를 위한 정치개혁 추진을 내걸어야 할 것이다. 물론 범여권과의 선거연합은 진보세력의 힘만으로 승리할 수 없을 때 검토해 봐야 하고, 진보세력 내부의 동의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이 정치의 주체로 나서야 할 때
지금 한국사회는 장기적인 대중적 보수주의나 신자유주의 강화, 개발주의의 낡은 흐름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진보의 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 기반을 닦아가는 흐름으로 갈 것인가의 전환점에 서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국면이 진보진영의 대응에 따라 오히려 진보진영에게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열어 줄 수도 있다고 본다.
정치인의 머릿속에 국민은 없다. 정치는 더러우니 피해야 하는 것일까? 국가 권력이 바뀐다고 반드시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는 우리 국민이 그동안 이른바 민주정부들을 겪으면서 반복되는 실망을 통해 통감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가 권력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정치를 외면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한 일이다.
올해 대선정국은 관전자의 입장에선 매우 흥미로운 게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참여자의 입장에선 피 말리는 승부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할 것이다. 아마도 우리 모두는 각자의 우리 사회와 정치에 대한 관심 정도와 참여 의지에 따라 이 양자의 어느 한쪽에 분명히 서거나, 이 양자 사이에 놓인 수많은 스펙트럼의 어느 한 지점에 위치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과연 어디에 서야 할 것인가. 정치는 정치인에게만 맡겨야 하는가? 나와 나의 가족, 그리고 이웃의 생존과 삶의 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될 국가 권력의 문제를 흥미로운 구경거리로 삼을 만큼 우리의 삶은 한가로운가?
물론 아니다.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는 태도가 절실하게 필요할 때다. 내가 위임한 권력이 나와 가족, 공동체를 위해 권력을 사용하지 않고 사익을 위해 권력을 남용한다면 이를 응징하는 것이 응당한 일이다. 이는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를 구경꾼이 아니라 정치 참여의 주체로 세우는 것이 옳은 태도일 것이다.
지금이 바로 국민 스스로가 정치의 주체라는 것을 선언할 때이다. 정치판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거나 투표로 심판하는 등의 소극적 참여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요구를 내걸고, 자신이 바라는 정치세력을 형성하도록 참여하며, 민주적 의사소통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나서야 한다. 또다시 정치인들에게 속아 들러리로 이용만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기보다는 대의제가 갖는 한계를 극복할 대안적 시스템을 만들어 위임한 권력을 통제하려는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더 이상 정치를 정치인의 놀음으로 전락하는 것을 용인해서는 한국사회에는 희망이 없다. 돈이 있으면 돈을 내고, 재능이 있으면 재능을 내서 역사와 사회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시민사회 각계의 신뢰받는 지도자들께 호소한다. 진보정치에 참여해 세상을 바꿔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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